주가조작 사건이 터지면, 이제 기사 끝에 낯선 문장이 하나 붙는다. “회사가 챙긴 부당이득의 두 배가 과징금으로 부과됐다.” 2024년 1월 시행된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미공개중요정보 이용·시세조종·부정거래라는 3대 불공정거래에는 부당이득의 최대 두 배, 그 이득을 따지기 어려우면 40억 원까지 과징금이 매겨진다. 자진신고를 하면 깎아주는 리니언시도 함께 들어왔다. 집행은 분명히 세졌다.
그런데 그 돈은 손해를 본 주주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과징금은 가해자에게서 걷는 제재금이지, 피해자에게 주는 배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증권 집단소송이 한 해에 200건쯤 제기된다. 한국은 제도를 시행한 20년 동안 열한 건 남짓이다. 흔히 “한국은 집행이 약하다”고 말한다. 절반만 맞는 말이다. 한국은 억제를 지었고, 보상을 비워뒀다. 왜 그런가.
두 종류의 집행 — 벌하는 것과 돌려주는 것
집행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일이 있다. 하나는 억제다. 가해자를 벌하고, 그가 부당하게 챙긴 이득을 토해내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보상이다. 손해를 입은 사람에게 그 손해를 돌려주는 것이다. 2024년의 과징금은 앞쪽에 속한다. 세고, 새롭다. 그러나 그것은 억제이지 보상이 아니다.
피해 주주의 회수는 다른 통로가 맡는다. 증권집단소송과 주주대표소송, 두 개의 사법 채널이다. 문제는 그 통로가 어떻게 설계됐느냐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한국의 그림이 얇아진다.
미국의 껍데기만 빌린 소송
흔히 한국 증권집단소송을 두고 “opt-in이라 참여가 어렵다”고 한다. 정확하지 않다. 한국의 제도는 형식상 opt-out이다. 확정판결의 효력이, 스스로 빠지겠다고 신고하지 않은 구성원 전체에 미친다. 미국식 집단소송의 골격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병목은 opt-in이냐 opt-out이냐가 아니라 진입 관문에 있다. 본안 심리에 들어가기 전에 별도의 소송허가를 받아야 하고, 다툴 수 있는 사유가 허위공시·부실기재·시세조종 등으로 한정 열거돼 있으며, 최근 3년간 세 건에 관여한 대표당사자나 대리인은 다시 나설 수 없고, 지면 상대편 비용까지 부담한다. 그 결과가 20년에 열한 건, 소송허가를 받는 데만 4년 넘게다.
미국이라고 아무 손해나 소송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집단소송의 근거는 희석 그 자체가 아니라 공시의 허위·부실, 즉 사기(Rule 10b-5)다. 주식이 희석됐다는 사실만으로는 제소할 수 없고, 2024년 연방대법원은 단순 누락에 대한 책임 범위를 오히려 좁혔다. 미국을 굴리는 것은 느슨한 요건이 아니라 다른 데 있다. 성공보수로 움직이는 전문 원고 변호사단, 그리고 소송 비용을 패소자가 아니라 회수한 배상금에서 떼는 구조다. 한국은 opt-out이라는 껍데기만 빌려왔을 뿐, 이 엔진은 가져오지 않았다.
독일과 일본은 다른 문을 지었다
좁은 문이 반드시 잘못은 아니다. 남소를 막으려는 것은 정당한 목적이고, 한국이 흔히 견주는 대륙법 국가 가운데 미국식 집단소송을 통째로 들여온 곳은 없다. 여기까지는 한국의 선택을 옹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독일은 2005년 모델소송(KapMuG)을 만들었다. 같은 쟁점을 둔 소송이 열 건 넘게 쌓이면 고등법원이 대표사건을 골라 공통 쟁점을 한꺼번에 판단하는 방식이고, 2024년 개정으로 피고에게 증거를 내놓을 의무까지 더했다.
일본은 또 다른 길을 갔다. 일본에는 일반적인 증권 집단소송이 없다. 대신 주주대표소송을 사실상 공짜에 가깝게 열어두었다. 대표소송을 ’재산권상의 청구가 아닌 것’으로 보아 청구액이 얼마든 소가를 일률 160만 엔으로 간주하고, 소송 수수료를 정액 1만 3천 엔(약 12만 원)으로 고정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 이유다. 대표소송에서는 승소해도 배상금이 원고 주주가 아니라 회사로 간다. 원고에게 직접 돌아오는 것이 없으니, 여기에 고액의 수수료까지 물리면 아무도 소를 걸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은 수수료를 낮춰 그 유인의 공백을 메웠다. 배상금이 회사로 귀속되는 구조는 한국과 같지만, 그 공백을 메울 장치를 둔 것은 일본뿐이다.
결국 한국만 미국식 문을 좁게 열어둔 채, 대안의 문은 짓지 않았다.
이미 열려 있는 문, 빗장만 안 풀었다
사실 한국에도 그 문 하나는 이미 있다 — 주주대표소송이다. 상장사라면 지분 0.01%를 6개월만 들고 있어도 이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런데 두 개의 빗장이 걸려 있다. 하나는 일본과 똑같이 배상금이 회사로 귀속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피고가 신청하면 원고가 담보를 제공해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문은 있는데, 걸어 들어갈 유인과 여력을 함께 눌러둔 셈이다.
이것은 앞서 에코프로비엠 유상증자를 다루며 짚었던 공백과 같은 자리다. 실체법의 잣대는 이미 섰다. 2025년 개정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혔다(2026년 3월 시행). 그러나 잣대가 아무리 높아져도, 소액주주가 그것을 실제로 관철할 통로가 좁으면 그 법은 종이 위에 머문다.
그렇다면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우리가 제도에 바라는 것은 가해자가 벌받는 것인가, 아니면 내 손해가 돌아오는 것인가. 지금 한국의 제도는 그 둘 중 어느 쪽을 위해 지어졌는가.
가해자의 처벌과 나의 회수는 다른 질문이다
밸류업이 겨냥하는 것은 결국 신뢰다. 그 신뢰는 “가해자가 처벌받는가”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내가 입은 손해를 내가 회수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도 그 신뢰의 한 차원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더 큰 원인은 주주환원과 수익성에 있지, 집행 채널 하나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다만 보상 가능성은, 2024년의 과징금 강화가 건드리지 않은 바로 그 한 차원이다.
모든 문이 똑같은 방식으로 열리지는 않는다. 미국식 엔진은 대륙법의 비용 원칙과 마찰이 커서 그대로 옮기기 어렵다. 반면 독일의 모델소송과 일본의 저비용 대표소송은 한국 제도로 더 자연스럽게 건너온다. 대표소송이라는 문은, 한국이 이미 가지고 있다. 새 문을 짓는 것보다 이미 있는 문의 빗장을 푸는 편이 더 작은 걸음이다.
그러니 다음에 어느 회사가 수십억 원의 과징금을 물었다는 헤드라인을 마주하거든, 그 숫자 옆에 한 가지를 더 놓고 보자. 그 돈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정작 손해를 본 주주의 자리에는 무엇이 남는지를.
한국은 집행을 안 지은 것이 아니다. 억제를 지었다. 비어 있는 것은 처벌이 아니라 보상이다. 그리고 밸류업이 겨냥하는 신뢰의 한 조각도, 바로 그 비어 있는 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