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코스닥은 서른 살이 됐다. 2차전지가 바닥을 다지고 반등하나 싶던 시점이었고, 시장에는 이제 오를 일만 남았다는 기대가 돌았다. 그런데 6월의 마지막 날, 코스닥 대장주 중 하나인 에코프로비엠이 장 마감 후 1조 2천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기습적으로 공시했다. 주가는 시간외에서 약 19% 빠졌고, 다음 거래일 정규장에서도 8% 넘게 밀렸다. 코스닥을 믿었던 이들에게 날아든 청구서였다.
유상증자는 왜 한국에서 유독 미움받나
유상증자는 회사가 새 주식을 찍어 자금을 조달하는 일이다. 에코프로비엠이 택한 방식은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다. 기존 주주에게 지분율대로 새 주식을 살 권리를 먼저 주고, 그들이 청약하지 않은 물량만 일반에 공모하는 구조다. 핵심은 이 방식이 기존 주주에게 “돈을 더 내라”고 요구한다는 데 있다.
한국 시장은 이 요구를 특히 싫어한다. 국내 실증 연구를 보면, 주주배정 증자의 공시는 유의하게 부정적인 주가 반응을 부른다. 할인율도 깊다. 주주배정 증자의 평균 할인율은 기준가 대비 약 -27.5%로, 일반공모(-17.2%)보다 훨씬 크다.
여기에 한 겹이 더 있다. 한국은 발행가를 미리 못 박는다. 이사회 결의 시점에 예정발행가를 공시하고(에코프로비엠은 주당 12만 1,200원, 기준가 대비 약 20% 할인), 청약 직전에 확정발행가를 다시 정한다. 발행가가 시장에 먼저 노출되면, 그 가격은 일종의 하한 신호로 읽히기 쉽다.
그런데 이번엔 착취가 아니었다
희석은 어느 시장에서나 악재다. 새 주식이 늘면 기존 주주의 몫이 줄기 때문이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세컨더리 공시의 평균 주가 반응은 약 -3%로 부정적이다. 같은 6월, 알파벳(구글)은 에코프로비엠의 아홉 배에 가까운 규모의 지분을 조달했고, 발표 후 주가가 약 5.5% 빠졌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다. 알파벳의 낙폭은 5.5%였고, 에코프로비엠은 19%였다. 게다가 에코프로비엠의 증자는 불법이 아니었다. 지배주주인 지주사 에코프로는 오히려 배정 물량의 120%를 초과 청약하겠다고 밝혔다. 발을 빼기는커녕 함께 돈을 넣는 것이다. 자금의 용처도 성장 투자, 인도네시아 니켈 공급망이었다.
착취도 아니고, 낭비도 아니고, 성장 투자인데도 시장은 폭락으로 답했다. 그렇다면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시장이 유상증자에 폭락으로 답할 때, 그 폭락은 희석이라는 산수에 대한 반응인가, 아니면 “또 우리 돈으로 그들의 일을 한다”는 불신에 대한 반응인가.
답의 실마리는 자금이 흐르는 방향에 있다. 조달액의 약 76%인 9,150억 원은 에코프로비엠 자신의 공장이 아니라 그룹이 함께 참여하는 인도네시아 프로젝트의 지분을 사는 데 쓰인다. 지주사와 자회사가 각각 상장된 그룹에서, 이 그림은 “내 돈으로 그들의 일”로 읽히기 쉽다.
법은 이 지점을 겨누기 시작했다
한국 법이 이사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미 분명하다. 대법원은 계열사 주식을 취득하는 회사의 이사라면 그 취득이 회사에 주는 재정적 부담과 실제로 얻을 이익을 객관적 자료로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경영판단이 보호받으려면, 그 이익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2025년 개정된 상법은 그 잣대를 한 단계 높였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히고,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며 전체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할 의무를 명시했다(2026년 3월 시행). 이 의무가 합법적이고 지배주주도 동참한 이번 같은 증자에까지 미치는지는 아직 판례로 시험되지 않은 열린 물음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사회가 발행 방식과 발행가, 시점과 자금 용처를 정할 때 이제 ’전체 주주’라는 명시적 기준을 마주하게 됐다는 점이다.
잣대보다 통로가 문제다
문제는 잣대가 아니라 그 잣대를 관철할 통로다. 미국에서 증권 집단소송은 활발하고 합의금도 크다. 다만 그 근거는 희석 자체가 아니라 공시의 허위·부실이며, 대부분 합의로 끝난다. 한국에도 증권집단소송 제도는 2005년부터 있었다. 그러나 2023년까지 제기된 것은 열한 건 남짓이고, 소송 허가를 받는 데만 4년 넘게 걸린다.
억지력의 차이는 처벌의 세기가 아니라 절차의 문턱에 있다. 소액주주가 실제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좁으면, 아무리 실체법을 손봐도 그 법은 거래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러니 다음에 유상증자 공시를 마주하거든, 낙폭의 숫자보다 다섯 가지를 먼저 보자. 주주배정인가 시장 매각인가, 발행가를 미리 못 박았는가, 조달한 돈이 회사 자신을 위한 것인가 계열의 지분을 위한 것인가, 지배주주도 함께 청약하는가, 그리고 개정된 충실의무를 소액주주가 실제로 관철할 통로가 있는가.
에코프로비엠의 폭락은 유상증자가 나빠서가 아니다. 한국의 제도가 유상증자를 거의 반드시 하락으로 번역하도록 설계돼 있고, 그 번역을 멈출 절차가 아직 비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