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억 원이 뉴스를 채우는 날
올해 SK하이닉스 직원 한 명이 받게 될 성과급은 애널리스트 추산 7억 원에 달한다. 같은 날 카카오 5개 법인의 파업 찬반투표가 동시에 가결됐다. 삼성전자 주주단체는 “세전 영업이익 12%를 성과급으로 배분하는 합의는 상법 위반”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것이 단순한 노사 갈등인가. 숫자들이 커졌을 뿐, 늘 반복되어온 봄철 임금협상의 연장선인가. 그렇게 보아 넘기기에는 주주단체가 꺼내든 법적 논리가 심상치 않다.
한국 기업 구조의 어떤 균열이 지금 막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일 수 있다.
하이닉스 룰이 열어젖힌 판도라의 상자
2025년 9월, SK하이닉스 노사는 특이한 합의에 도달했다. 영업이익의 10%를 상한 없이 성과급으로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전까지 성과급에는 기본급의 1,000%라는 상한이 존재했다. 그 상한을 없애버린 것이다.
2026년 1분기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37조 6,103억 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이 수치에 ’10% 룰’을 적용하면 직원 1인당 성과급 추산액이 7억 원에 육박한다. 어느 언론은 이 결과를 이렇게 표현했다: “보너스 하나가 17년치 연봉.” 이 한 줄이 판교 테크밸리 전체를 흔들었다.
댐이 터졌다. 삼성전자 노조는 즉각 이익연동 성과급 제도화를 요구했고, 카카오·현대차·LG유플러스로 파장이 이어졌다. 2026년 3월 10일 시행된 노란봉투법(하청 노조가 원청에 직접 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은 SK하이닉스 물류 하청업체까지 원청에 성과급 청구서를 제출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하나의 수치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한국 상장기업의 주가순자산비율(PBR·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기업 평가 지표)은 선진국의 52%에 불과하다. 45개국 중 41위다. 코리안 디스카운트의 민낯이다.
투자자들이 한국 기업을 할인해서 사는 이유로 지배구조 후진성, 낮은 배당, 지정학적 리스크가 거론되어 왔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다른 차원의 문제를 가리키고 있다.
성과급은 비용인가, 이익처분인가
한국 상법은 이익배당(주주에게 회사 이익의 일부를 나눠주는 것)을 주주총회 결의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제462조). 반면 직원 성과급은 지금까지 인건비, 즉 ’비용’으로 처리되어 이사회 재량의 영역이었다.
이 구분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 삼성전자 주주단체가 내세운 위법 사유는 세 가지다. 첫째, 세금을 내기 전인 세전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산정하는 것은 국가의 조세권을 우회한다. 둘째, 상법 제462조가 정한 배당가능이익 산정 절차(실제 배당이 가능한 이익 규모를 계산하는 법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회사 이익을 외부로 유출할 수 없다. 셋째, 주주총회 결의 없이는 무효다.
논리의 핵심은 이것이다. 일반적인 성과급은 비용으로 반영되어 영업이익 자체를 줄인다. 그런데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사후에 배분하는 구조는 이익을 먼저 확정한 뒤 그 일부를 직원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경제적 실질이 이익처분과 같다는 논리가 성립할 여지가 생긴다.
이 주장의 설득력에 대해서는 법조계에서도 이견이 있다. 다만 주목할 것은 이 쟁점에 대해 대법원 판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법리 공백이다. 그리고 그 공백은 이제 현실 분쟁의 형태로 터져 나오고 있다.
미국·독일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나
이익을 직원에게 배분하는 문제는 한국만의 고민이 아니다. 자본주의 역사가 긴 나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왔다.
미국 Delaware주 법원의 접근 방식은 ’절차 설계’다. 상장기업은 독립이사(대주주나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이사)로만 구성된 보상위원회(Compensation Committee)를 통해 성과급을 결정한다. 보상위원회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면, 법원은 경영판단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이사의 합리적 경영 판단을 법원이 사후에 재단하지 않는 원칙)을 적용해 주주의 이의 제기를 사실상 차단한다. 절차 자체가 소송 방패가 되는 구조다.
독일의 해법은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한다. 공동결정제(Mitbestimmung)에 따라 직원이 2,000명 이상인 기업은 감사이사회(Supervisory Board)의 절반을 노동자 대표로 구성해야 한다. 임금과 성과급 설계에 노동자가 처음부터 참여하므로, 분쟁이 법원에 가기 전에 이사회 안에서 해소된다. 미국이 ’절차’로 불확실성을 관리한다면, 독일은 ’구조’로 갈등 자체를 내부화한다.
두 나라는 완전히 다른 철학에서 출발했다. 결과는 같다. 이익 배분을 둘러싼 법적 불확실성이 낮고, 투자자들이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기업을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은 이 두 길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선택하지 못했는가. 그 답이 코리안 디스카운트의 두 번째 층을 설명한다.
한국은 왜 두 해법 모두 없는가 — 개정 상법은 절반이다
물론 반론이 있다. 이사회 위임 원칙을 들어, 직원 성과급은 경영 판단의 영역이며 주주가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논리다. 상법에서 명시적으로 주주총회 결의 사항으로 정하지 않은 이상 이사회 재량이 우선하며, 지배적인 학설도 이사회 권한 범위를 좁게 해석하지 않는 쪽을 지지한다.
이 반론은 틀리지 않는다. 현행 법 구조 안에서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법이 방금 바뀌었다. 2025년 7월 22일 공포된 개정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추가했다. 이사는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고, 전체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 세전 영업이익의 12%를 이익연동 성과급으로 설계하는 것이 이 의무와 충돌하는지, 법원의 판단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여기서 코리안 디스카운트 해소 논의의 본질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주주의 횡포를 규율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이익이 직원에게 얼마나 돌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만드는 것이 다음 과제인가.
압축 성장 과정에서 재벌 위주의 자원 배분을 선택했고, 1987년 민주화 이후 기업별 노조 체계로 노동 제도를 설계했다. 이익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법적 장(場)을 처음부터 만들지 않은 것이다. 독일식 공동결정제도, 미국식 보상위원회도, 이 사회가 선택하지 않은 길이다.
2026년 7월 23일 시행 예정인 독립이사제(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강화하고, 자산 2조 원 이상 대기업은 이사회 과반수를 독립이사로 구성하는 제도)는 의미 있는 진전이다. 정작 미국에서 성과급 분쟁을 실제로 막는 것은 독립이사 비율이 아니다. 독립이사들로만 구성된 보상위원회다. 한국 개정 상법에 보상위원회 의무화는 없다.
누가 이익을 얼마나 가져갈지가 법적으로 불확실한 기업을 정가에 사기는 어렵다.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을 할인하는 이유의 일부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법 개정으로 코리안 디스카운트의 첫 번째 층에는 손을 댔다. 독립이사제만으로는 절반이다.
합의가 쌓이는 속도로
법은 한 사회의 많은 목소리가 합의된 결과물이다. 주주와 직원, 경영진과 노조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금, 그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리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 분쟁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 자체가 의미 있다. 보이지 않았던 법리 공백이 이제 보인다. 보여야 고칠 수 있다.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과정이 쌓여, 언젠가 더 나은 법적 기반이 만들어질 것이다. 코리안 디스카운트가 두 번째 층에서도 해소되는 날을 같이 지켜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