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dna/2026-07-14-director-oversight-cartel.md (KO 정본 — EN marginnote.org/en/director-oversight-cartel-liability의 KO 병행판. 사이트 marginnote.org/ko/director-oversight-cartel-liability에 게재.)

시멘트 담합으로 회사가 과징금과 벌금 428억 5,500만 원을 물었다. 그런데 그 손해를 회사에 되갚게 된 이사들 중에는, 담합을 지시하지도 보고받지도 않은 대표이사가 있다. 그가 진 몫만 45억 원이다.

담합을 한 사람이 아니라, 담합을 막지 못한 사람이 배상한다. 이 결과를 만든 것이 2025년 6월의 대법원 판결이다(대법원 2025. 6. 26. 선고 2024다316391 판결).

판결의 요지 — 담합에 참여하지 않은 이사에게도 책임을 물었다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를 세운다

이 소송은 소수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를 상대로 낸 대표소송이다. 상법 제403조는 회사가 이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때 주주가 회사의 권리를 대신 행사하도록 허용한다. 그 책임의 실체는 제399조에 있다. 이사가 고의나 과실로 임무를 게을리해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배상한다는 조항이다.

여기에 오랜 시간 감시의무 법리가 쌓였다. 이사는 자기 업무만 처리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사와 직원이 법을 지키는지 감시할 의무를 진다. 규모가 크고 분업화된 회사에서는 그 감시를 ’작동하는 내부통제시스템’으로 이행해야 한다(대법원 2022. 5. 12. 선고 2021다279347 판결 등). 이번 판결은 그렇게 축적된 선을 담합이라는 사안에 적용했다.

첫 번째 길 — “나는 안 했다”가 막혔다

법원은 담합을 지시하지도 알지도 못한 이사도 책임진다고 봤다. 근거는 감시의무 위반이다. 이사는 “높은 법적 위험이 예상되는 업무와 관련해서는 제반 법규를 체계적으로 파악하여 그 준수 여부를 관리하고 위반사실을 발견한 경우 즉시 신고 또는 보고하여 시정조치를 강구할 수 있는 형태의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해 작동시키는 방식으로 감시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컴플라이언스 조직이 서류상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면책되지 않는다. 법원은 그 조직이 실제로 굴러갔는지를 본다.

이것 자체는 새로운 법리가 아니다. 앞선 판례들이 세워 둔 원칙을 담합 사안에 옮긴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의미다. ’이사는 몰랐다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원칙이 담합이라는 구체적 사안에서 확인됐다.

두 번째 길 — “그래도 돈은 벌었다”가 막혔다

더 날카로운 것은 두 번째다. 피고들은 담합으로 회사에 이익이 생겼으니 그만큼 배상액에서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익을 계산해 보겠다며 감정신청까지 냈다.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은 “회사는 기업활동을 하면서 범죄를 수단으로 하여서는 아니되므로”, 담합으로 이익이 생겼더라도 그 이익을 배상액에서 공제하는 것은 회사의 위법한 이익 보유를 그대로 승인하고 이사의 법령 위반과 회사의 범죄를 조장하는 결과가 되어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법원이 정책 논리만으로 이 결론에 이른 것은 아니다. 담합으로 회사에 그만한 이익이 실제로 생겼다는 점 자체가 증거로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판단도 함께 깔려 있었다. 2주 앞선 자매 판결(대법원 2025. 6. 12. 선고 2021다256696 판결)이 직접 담합에 가담한 이사에게 세운 규칙을, 이번 판결은 감시만 실패한 이사에게까지 넓혔다. 두 판결이 함께 두 번째 길을 막았다.

여기서 이 판결이 진짜 묻는 것이 드러난다. 문제는 누가 담합을 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그것을 막을 책임을 졌는가다.

그러나 배상은 손해의 10분의 1이었다

그렇다고 이사들이 손해 전액을 문 것은 아니다. 법원이 이사 네 명에게 지운 배상액은 합쳐서 약 85억 원, 회사가 입은 손해 428억 원의 5분의 1 수준이다. 그중 대표이사 한 사람의 몫이 45억 원, 손해의 10분의 1 남짓이다. 한국 법원은 ’손해분담의 공평’이라는 이름으로 이사의 배상액을 재량껏 줄여 왔고, 이 사건에서도 이사가 개인적으로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 참작됐다. 감액의 크기만 보면 판결의 무게가 가벼워 보일 수 있다.

미국은 문턱이 높고, 한국은 배상을 줄인다

미국과 견주면 이 구조의 특징이 선명해진다. 델라웨어 법원에서 이사의 감독책임(이른바 Caremark 책임)은 “원고가 승소를 바랄 수 있는 이론 가운데 아마도 가장 어려운 이론”으로 불린다. 이사회가 감시 체계를 아예 만들지 않았거나, 만들어 놓고 의식적으로 외면했다는 것까지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9년 Marchand 판결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회사의 핵심 사업에 직결되는 리스크라면 경영진 차원의 모니터링으로는 부족하고 이사회로 정보가 직접 올라오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대신 일단 걸리면 무겁다. 감독의무 위반은 충실의무의 문제로 취급되어 정관으로 면책할 수 없고, 한국처럼 법원이 배상액을 재량으로 깎아 주는 독트린도 없다.

한국은 반대다. 고의·과실이면 족하고, 시스템이 작동했음을 증명할 책임도 이사에게 넘어온다. 문턱은 낮다. 대신 배상은 재량으로 줄어든다. 어느 쪽이 이사를 더 크게 노출시키는지는 단순하지 않다. 다만 한국에만 있는 것은 분명하다. 위법한 이익으로 배상을 깎을 수 없다는 원칙이다. 그리고 감액은 사건마다 법원이 재량으로 정하는 것이라, 다음 사건에서도 이만큼 깎인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이제 지켜볼 것

이사회에서 컴플라이언스는 더 이상 장식이 아니라 개인 책임의 자리가 됐다. 미국 이사회들이 Caremark와 Marchand 이후 준법 기능을 이사회 직속으로 끌어올린 것처럼, 한국 이사회가 그 길을 갈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사는 ’몰랐다’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 판결은 그 원칙이 담합 사안에서도 그대로 작동함을 보여줬다. 담합 적발이 이어지는 지금, 그래서 이 판결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이 글은 공개된 자료에 근거한 개인적 분석이며, 법률 자문이 아니다.